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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살아남기/미국에서 출산, 육아

[미국 출산 후기] 나의 출산 일기 2. 너를 만나기까지 ( 미국 출산 병원 자연분만 2박 3일 입원 후기)

by 초록 하나디 2022. 8.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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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복실로 옮겨졌을 때는 새벽 약 5am 정도 된 것 같다. 이때부터 우리의 빡센 2박 3일의 일정이 시작되었다. 병원에서 우리의 사진을 보면 정말 초췌하고, 짠하다… 진짜 짠하다는 말이 정답!

한국에서는 출산을 안 해봤지만, 그래도 미국만의 특별한 경험을 한 것은 확실한 것 같다. 우리가 있었던 병원은 자연분만의 경우 2박까지 있을 수 있었다. 1박 만에도 퇴원이 가능하다고 했는데 그전에 해야 할 기본 검사가 너무 많아서 과연 1박 안에 퇴원이 가능한지는 의문이다. 우리는 처음부터 2박 내내 다 있겠다고 했다.

한국과 크게 다른 점은 미국은 따로 모자동실 시간이 있는 게 아니라 그냥 낳은 순간부터 아기가 나와 함께한다. 분만실에서부터 회복실로 옮길 때도 휠체어를 탄 내 품에 안겨서 이동했다. 다행인 건 생각보다 초초초 신생아들은 별로 힘들지 않다. 정말 많이 자기 때문. 초보 아빠는 너무 많이 자서 걱정이 된다고 계속 말을 하기도 했다. 나중에 보니 먹는 시간 빼고 계속 자는 게 정상이었다. 

병원에서의 일상은 정말 바빴다. 누가 왔다 가고 있는지도 다 일일이 기억하기 힘들 정도로 많은 과에서 왔다 간다. 2박 3일은 온몸이 아파서 누워 있다가 누가 들어오면 1-2시간에 한 번씩 일어나서 앉는 것의 연속이었다.

 

1. 기본적으로 담당 보조 간호사가 2시간에 한 번씩 꼬박 들어와서 나와 아기의 심장박동 vital 검사와 온도 검사를 한다.

 

2. 담당 간호사도 따로 2-4시간에 한 번씩 와서 진통제 처방, 아기의 건강 체크 ( 얼마나 자주 먹이는지 확인, 아기의 기저귀를 몇 번이나 갈았는지), 산모의 건강 체크 (피를 얼마나 흘리고 있는지, 화장실은 갔는지, 심지어 산모의 기저귀까지도 무게를 재서 오로, 피가 얼마나 나오는지를 체크, 첫 소변 세 번은 소변 양까지 측정)

처음으로 소변을 볼 때는 굴욕적으로 간호사와 같이 가야 하고 간호사가 일회용 팬티도 입혀주고 소변 본 후 후처치 방법도 알려줌. 한동안은 화장실 가는 것이 그렇게 괴롭고 끔찍하고 아프고 나 자신이 싫었다.

3. Lactation consultant (모유수유 전문가), OBGYN doctor (부인과 담당 의사), Pediatrition nurse, doctor (소아과 간호사, 의사), 마취과 의사 등은 삼일 내내 한 번씩 왔다 갔다.

3. 청력 검사는 한 번만 통과하면 되는데 한쪽 귀는 한 번만에 되었는데 다른 쪽은 아기가 계속 울어서 청력 담당 간호사도 결국 매일 와서 검사를 했다.

이렇게 내 병실에 정말로 많은 사람들이 왔다 갔다 한다.

담당 간호사들마다 각각 장단점이 있어서 배울 점들이 많았다. 어떤 간호사는 스와들을 정말 잘했고, 아이를 정말 잘 달래는 간호사도 있었고, 기저귀를 정말 잘 갈아준 간호사도 있었다. 피곤하긴 했지만 한 번씩 들어와서 이것저것 알려주는 간호사들 덕분에 우리는 아기와 있는 내내 많은 것들을 배울 수 있었다.

모유수유에 대해서는 또 다른 글에 다룰 예정이지만 2박 3일 동안 아이 먹이는 feeding 때문에도 좀 고생을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시행착오를 많이 겪어서 병원에서 나와서는 쉽게 모유수유 ( 아직은 혼합 수유 진행 중이지만 곧 완모의 길로 갈 수 있을 것 같다)가 정착될 수 있었던 것 같다.

간략하게 써보면 출산한 지 몇 시간 안돼서 젖을 물려야 했고, 계속 미련하게 잘못된 방식으로 물리는 바람에 둘째 날에는 이미 피멍이 든 상태. Lactation 전문가는 그래도 계속 물려야 한다고 하면서 강행을 강요했다. 어떤 부분은 확실히 전문가의 도움이 된 것이 있었고, 어떤 것들은 간호사와 의견이 달라서 우리에게 혼란만 주기도 했었다.

먼저 수유 자세는 확실히 도움을 받았었다. 또 간호사가 손으로 눌러서 펌핑으로 유축하는 수동 유축기를 사용하라고 주고 갔는데. Lactation 전문가 말로는 초유 때는 양이 많지가 않고 점성이 있어서 잘 안될 것이라고 손으로 짜서 숟가락으로 먹이는 것이 나을 것이라면서 방법을 알려줬는데, 이 방법은 꽤나 도움이 되었다.

아무리 유축기를 써도 팔만 아프고 찔끔씩 한 두 방울이 유축기에 달라붙어 있기만 했는데 직접 짜서 숟가락으로 담으니 한 두 스푼 정도가 나왔다. 전문가는 병원에서 준 자료 (아래 첨부)를 열어보라고 하면서 하루에 신생아 위는 어차피 이 정도만 차도 되니 이렇게 적게 먹어도 아이는 배고프지 않다고 했다-> 따라서 모유 수유를 계속하고 분유를 먹이지 말아라. 이 얘기를 들은 후에는 한 두 숟가락 나오는 것에 감사하고 또 아기를 굶긴다는 죄책감 없이 먹일 수 있었다. (그러나 결국에는 분유를 받아서 먹였다.)


나중에 모유 수유에 대해서 공부를 하다 보니 처음에 이렇게 손으로 (hand expression) 빼주는 것이 모유 수유 정착에 엄청난 도움이 된다는 것을 알았다 (다른 글에서도 언급할 예정)

그러나 우리가 공갈젖꼭지/쪽쪽이를 사용하고 있는 것을 보고 쓰지 말라고 했고, nipple shield 유두 보호기 또한 사용하지 말라고 한 것 등은 좀 마음에 들지 않았다. 피멍이 정말 심하게 들어서 도무지 물릴 수가 없었는데도 보호기를 쓰기 시작하면 나중에 물리기가 어렵다며 주지 않았다.

확실히 간호사와 lactation 전문가는 의견이 달랐다. 어떤 간호사는 쪽쪽이를 쓰라고 했고, lactation 전문가는 쓰지 말라고 했고, 간호사는 분유를 먹이라고 했고, lactation 전문가는 먹이지 말라고 했고... 아기가 배고파하는 것 같아서 우리는 결국 분유를 받아서 조금씩 먹였는데, 먹이는 방식에 대해서도 다양한 의견을 줘서 주사기로 조금씩 줘라 (인공 젖병의 젖꼭지에 익숙해지지 않도록) 숟가락에다가 줘라 등등 정말 다양한 의견들이 있어서 우리는 헷갈리기도 했었다. 다양한 시도를 했었고, 집에 와서는 결국 산후조리사 선생님이 계셔서 쉽게 정착할 수 있었으나 그때는 병원에서 준 젖꼭지가 너무 빠르게 나와서 아이가 받아들이는 것이 힘들었던 것 같고, 집에서는 한 번도 하지 않았던 분수토도 했다.

 

여하튼 정말 다양한 시행착오를 겪었다. 태어난 지 24시간이 되었을 때는 nursery에 아이를 데리고 가서 피검사 등을 진행했다. 약 3시간 정도 아이를 데리고 가서 목욕도 시켰는데 잠시 아기가 없으니 그렇게 편할 수가 없었다. (목욕은 시키길 원하는지 미리 의사를 물어봤었다.)

 

여기서 또 에피소드가 있는데, 우리는 신생아들은 피검사를 발바닥에 하는지 전혀 몰랐다. 근데 하필 nursery에 데려갈 때 담당 보조 간호사가 유난히 다른 간호사들에 비해 말도 없고 좀 차가웠는데, 아이를 데려다주고는 발바닥에 밴드가 붙여져 있고 피가 철철 흐르길래 너무 놀라서 화가 끝까지 났었다. 우리는 그게 피검사 때문인지도 모르고.. 애를 데려가서 다칠 수는 있는데 다쳤으면 부모한테 말을 해줘야지 왜 몰래 밴드 붙이고 말도 없이 두고 가는지 너무 속이 상했다.

 

나중에 지인한테 물어보니 피검사를 한 것이라고 해서 매우 민망했던... 알아야 할 것들이 태산이다. 조금씩 배워가야지 ^^;;;  48시간이 되었을 때도 몸무게, 키 등을 검사했다. 2.95kg으로 태어났을 때의 몸무게보다 확실히 빠졌다. 그러나 태어나서 10일간은 계속 빠지는 것이 정상이라고 했기에 걱정을 하지는 않았다. 새벽 3시에 태어난 아기라 24시간, 48시간 검사도 새벽에 진행을 해야 해서 힘들었다. 

 

아팠던 곳이 정말 많았다. 생각을 안 하려고 노력했고, 이쁜 아기만 보려고 했던 것 같다. 이때는 생각을 하면 내 몸이 너무 무서웠고 괴로웠다. 모든 곳이 아파서 과연 내가 다시 정상 생활을 할 수 있을까 의심마저 들었다.

1. 당연히 밑은 정말 너무 아파서 화장실 가는 것도 끔찍했고 그냥 다 싫었다.


2. 훗배앓이- 이 통증은 아이를 낳기 전까지는 아예 모르고 있었던 새로운 정보였는데, 자궁이 원래의 크기보다 약 500배가 늘었다가 다시 줄어들면서 찾아오는 통증이라고 한다. 정말 기분 나쁜 통증으로 계속 힘이 없었다.

3. 허리 통증- 무통주사의 후유증으로 허리가 계속 아파서 누워 있는 것도 힘들어서 계속 옆으로 누워 있어야 했었다.

4. IV 꽂은 곳- 정말 소소하게 주삿바늘 꽂은 것이지만 주사 바늘을 꽂은 채로 진통과 출산을 겪으면서 주삿바늘이 엄청 깊게 박혀있었는데 빼지도 못하고 엄청 아팠다. 나중에 IV가 들어가고 있지 않아서 빼 달라고 하는데도 엄청나게 오래 걸리고 여러 번 간호사를 불러야 했어서 좀 짜증이 났었다. 빼고 나서도 한참 멍이 들어 있었고 통증이 오래갔다.

5. 가슴통증- 피멍

모유가 차면서 안에 가슴도 아팠고, 또 무작정 물리면서 피멍이 들어서 정말 스치지만 해도 유두가 아팠다. 

 

6. 이가 아프기 시작했다. 이때 느꼈다 출산이 쉽지 않구나 정말 모든 곳이 다 아파지는구나....

 

아래도 아프고 허리도 아프고 몸을 일으키는 게 힘들어서 진짜로 병원 의자의 자동으로 일으켜주는 버튼이 life saver였다. 진통제로 버텼다는 게 진짜 맞았던 2박 3일. 진통제도 mortin과 tylenol 두 가지를 먹었다. 헤롱헤롱 한 상태로 침대에만 있으면서 누가 들어오면 버튼으로 겨우 일어나고 그랬다. 그러나 이틀 삼일... 조금씩 괜찮아졌고, 삼일차에는 진통제 빨이 들었을 때는 걸어 다닐 수도 있어서 짐 정리도 하고 그랬다. 

 

꼬박 이틀까지는 몸도 일으키지 못해서 아기 기저귀 갈아주는 것, 스와들 싸는 것조차 나는 하지 못하고 남편만 전문가가 되어가서 뒤처지는 것 같고 엄마의 노릇을 못하는 것 같아서 미안하기까지 했었다. 나중에 보니 이 두 가지는 너무 기본적이고 한 두 번만 하면 금방 마스터할 수 있는 것들이었다. 


다양한 시청각 영상들이 있었는데, 우리는 하나도 보지 않았다가 나중에 SBS (Shaken Baby Syndrome) 흔들린 아기 증후군에 대한 영상은 보지 않으면 퇴원을 할 수 없다고 해서 그때서야 엄청난 자료들을 티비로 볼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지인이 우리 병원 밥이 정말 맛있다는 것을 강조했었는데, 일단 몸이 아프고 정신이 없었기에 첫 식사는 기대만큼은 아니었다. 그러나 점점 입맛이 돌아오면서 어떤 특정 메뉴는 맛있었다. 특히 콘브레드, 치즈케이크, 팬케이크 등등 건강한 한식만 먹고 있는 22일 차인 지금 시점에서는 병원밥이 그립기도 하다. 특히나 과일, 디저트, 음료 등 다양한 메뉴 옵션이 있는 것이 참 좋았다.

미국은 병원에서 출생 신고를 마친다. 이 부분이 참 신기했는데, 한국 같은 경우는 출생신고를 나중에 따로 하는 식이어도  안 하는 경우가 없어서 그런 것 같고, 미국은 워낙 불법 이민자들도 많아서 그런 것이 아닐까. 무튼 출산 전에 아이의 이름을 미리 정해서 가야 한다. 아기의 이름은 미들네임까지 다 정해서 갔으나 다른 사항들도 자세하고 꼼꼼하게 기록해서 birth certificate을 퇴원 전에 제출하는 곳에 냈다. 

 

아, 지인들이 병문안을 왔었다. 첫날에 오겠다고 했으나 내 상태가 너무 안 좋아서 둘 째날에 오라고 했는데 꽃과 풍선을 가지고 왔다. 정말로 몸이 아파서 찡그린 얼굴만 하고 있었는데, 지인들이 아주 잠시나마 왔다 가니 웃으면서 힐링이 되었었다. 참 감사하다. 

 

퇴원하는 날은 오전에 빨리 갈 수 있을 거라 생각했지만 통과 못한 청력 테스트, 소아과 마지막 검진, 서류 작성 등 해야 할 것이 정말 많았다. 퇴원 수속을 밟고 집에 출발할 때가 약 오후 3시였다. 마지막까지 받을 수 있는 것들을 다 챙겨서 왔는데 이 부분은 병원에서 주는 리스트와 챙겨 오면 좋은 것들은 다른 글에서 자세하게 다룰 예정이다. 

 

미국에서는 카시트가 없으면 절대 퇴원을 할 수가 없다. 퇴원을 하겠다는 의사를 밝히니 휠체어를 가지고 병원 스태프가 왔다. 기념사진을 몇 장 찍고 신랑이랑 2박 3일 동안 한 발짜국도 안 나갔던 그 병실 밖을 나갔다. 나는 휠체어에 앉아서 아기를 안았고, 신랑은 짐을 들고 차를 빼서 나왔다. 원래는 스태프가 카시트가 있는지도 확인을 하고 제대로 앉히는지 확인까지 하는데 우리 담당자는 카시트가 있는지도 확인을 하지 않았다. 

 

우리는 초보 엄마 아빠라서 물려받은 카시트를 제대로 채웠다고 생각을 하고 집으로 출발했고, 나는 카시트에 있는 모습이 너무 귀여워서 사진을 여기저기 보냈는데, 알고 보니 카시트의 벨트의 부품이 없었던 것이었고, 엄청나게 위험하게 아이를 데리고 온 것이었다. 집이 가까웠으니 다행이고, 사진을 아이가 있는 지인에게 보내서 바로 잘못을 알았으니 망정이지...

 

정석대로라면 병원 스태프가 우리가 부품이 없는 것을 알고 병원 퇴원을 안 시켜 줬을 것이고 우리는 그날 당장 새로운 카시트를 구하느라 엄청 고생을 했을 것이다. 이것 또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급하게 다른 카시트를 그다음 날 지인으로부터 구할 수 있었다. 이 또한 감사한 일...

 

이렇게 추억이 많았던 병원을 떠나왔다. 고통에 많은 생각 없이 2박 3일이 지났지만, 평생 잊지 못할 내 소중한 아기가 태어난 병원. 병원을 나오고 집에 오니 마음이 편하고 좋더라. 그렇게 아기와 우리 셋 새로운 출발을 시작했다.

 

미국 병원비, 모유수유, 미국 출산 병원에서 제공하는 물건 리스트 등은 다른 글에서 자세하게 다룰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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