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을 생각하니 벌써 눈물이다 나온다. 딱히 몸이 아팠어서가 아니라 그냥
2주가 지난 그날이 아직도 무언가 감격스럽고 힘들었고 말로 표현하기 힘든 오만가지 감정이 다 든다.
많은 사람들의 미국 출산 후기를 보면서 도움도 받고, 두렵기도 했고, 또 희망도 정보도 얻었기 때문에 기록용겸 다른 사람들도 도움을 받을 수 있을지도 모르니 글을 써본다.
먼저 나는 7/12일 화요일 새벽 3시에 39주 차 3일인 날에 출산을 했고, 월요일 오후 5시 즈음에 병원으로 출발을 했다.
일단 전조 증상으로는 토요일부터 방광을 콕콕 찌르는 느낌이 심해졌다. 정말로 자궁 밑으로 아기가 많이 내려왔다는 느낌이 들었다. 일요일에는 허리가 아프기 시작하면서 가진통이 조금씩 오는 느낌이었다. 일요일 저녁부터는 가진통이 살짝 더 왔지만, 그냥 일반적인 생리통이었고 전혀 심하지는 않았다. 마음의 준비를 했고, 그다음 날 정기 검진이 있어서 기대하고 갔다.
월요일 아침 8:15 am 39주 차 2일
아침에도 아주 약간 미세한 가진통이 있었고, 정기 검진을 갔다. 여태 의사들이 너무 Chill 하고 딱히 도움이 되는 대답보다는 기다려보자 언젠가는 나올 거고 걱정 안 해도 돼 식의 태도라서 의사를 바꾸어 보았다. 중국계 미국인 의사인 것 같았는데, 설명도 똑바로 해주고 원하는 바를 확실하게 듣고 피드백을 줘서 마음에 들었다. 내진을 했는데, 이미 3cm가 열렸다고 했다. 지난번에는 1cm 정도 열렸고, 거의 안 열린 거나 마찬가지라고 했으니 매우 희망적이었다!
3cm가 열린 만큼 다음 진료를 잡는 것이 무의미할 수도 있지만 그래도 다음 진료 날짜를 잡고 또 41주는 넘기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하기 때문에 41주에 유도 분만 날짜도 잡고 가라고 했다.
9:00 am. Membrane sweep= 자궁막을 내진으로 자극하는 것. 을 해주었다. 이렇게 자극을 할 경우 자연 진통이 올 수도 있다고 지난번에 들었고, 의사가 할 의향이 있냐고 물었을 때 나는 적극적으로 해달라고 했다.
내진과 Membrane Sweep이 매우 고통스럽다고 들었으나 나는 약간의 불편함이 있었고, 그렇게 아프지는 않았다.
남편은 일이 있어서 학교를 갔고, 나는 집에 문을 열고 들어오는 순간부터 살짝 더 높은 강도의 진통을 느끼기 시작했다. 이 전까지는 그냥 생리통이었다면, 이 때는 진통이 오면 일단 누워야 했었다. 간격이 매우 일정해지고 있었다. 10분 간격! 그러다가 드디어 9:40 am 이슬까지 비쳤다. 맨날 이슬이 대체 무엇인지 어떻게 생긴 건지, 임신 전조 증상을 찾아봤었는데 보니까 그냥 알 수 있었다! 아 이건 이슬이다!
남편에게 10분 간격으로 진통이 일정해지고 있다고 메시지를 보냈고, 남편은 오늘이다 싶어서 하던 일을 미루고 집에 도착. 아침에는 꼭 칼국수나 잔치국수를 점심으로 해 먹겠다고 했지만, 막상 점심이 되니 너무 귀찮아져서 11:30am에 점심을 있는 반찬으로 잘 먹었고 이때 즈음에는 6분 간격으로 진통이 찾아옴.
너무 피곤해서 낮잠을 1시간 잤는데, 진통으로 깼고 그 후에는 다시 진통 간격이 10분으로 바뀌었다. 초산의 경우 진통이 5분일 때 병원에 가는 것이라고 들었기에 계속 진통 간격이 짧아지기를 기다리면서 짐볼을 열심히 탔다. 그렇게 오후 5시까지 짐볼을 타면서 진통의 간격이 짧아지기를 기다렸다. 가진통과 진진통의 차이가 진진통은 진통이 왔을 때는 아프지만 그 사이 간격 때는 안 아픈 것이라고 했는데, 정말 지킬 앤 하이드일 정도로 진통이 온 그 1분 30초 동안은 숨을 쉬어야지만 참아질 정도로 아팠고, 진통이 떠나고 나면 6-10분 동안은 너무 평온하고 노래도 부를 수 있을 정도로 멀쩡했다. 그렇게 지킬앤 하이드와 같은 짓을 오후 5시 pm까지 하고 또 배가 고파서 만두와 시리얼을 먹었다. 정말 고민하고 먹었는데, 결론적으로 잘한 짓이다. 많은 후기들을 보면서 얻은 팁으로 나름 실행한 것인데 정말 잘한 두 가지.
- 식사를 하고 가자! - 분만실에 옮겨지기까지 등등 너무나 오랜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나중에는 배고프고 힘이 없어서 힘주기가 어렵다는 글을 많이 봤다.
- 최대한 늦게 가자! - 자궁문이 다 열릴 때까지 혹은 에피듀럴/무통주사를 맞을 수 있을 때까지는 어차피 진통을 불편한 병원에서 겪어야 하기 때문에 편안한 환경인 집에서 최대한 버티고 가는 것이 좋다는 글을 봤다. 실제로 나도 짐볼도 타고, 드라마도 보고 내 소파에서 진통을 겪으면서 버텼다.
5:20 pm. 병원으로 출발. 5:40 pm병원 도착. 발렛 파킹을 하지 않았다. 충분히 걸을 수 있었고, 더 자궁문이 열릴 때까지 걷고 운동을 하고 싶었기 때문.
Triage= 환자를 분류해서 필요한 병실로 옮기기 전 검사실. 자리가 날 때까지 약 1시간 반을 기다렸다. 멀쩡할 때는 멀쩡하다가 진짜 진통이 심해질 때도 있었다. 답답하게 남편이랑 호흡을 하면서 그냥 마냥 기다렸다. 다양한 임산부들이 나와 같이 대기하고 있었는데, 양수가 터져서 온 사람, 혈압이 높아서 유도 분만을 하러 온 사람 등이 있었으나 나처럼 진통을 하는 사람은 없었다.
7:10 pm 드디어 검사실에 들어갔다. 수축 검사 시작. 이때는 40-60까지 수치가 올라가기도. 내진을 했고, 아직 3cm라는 얘기를 들었다. 7:41 pm양수가 터졌다. 양수가 터지는 것도 어떤 느낌인지 참 궁금했는데…. 정말 콸콸 쏟아지더라 검사실은 춥고 양수는 계속 흘러서 찝찝하고… 의사는 안 오고… 답답의 연속.
9:20 pm 드디어 초음파를 보았고, 내진도 완료했다. 아직 3cm 열렸다고 했고, 분만실 이동 대기. 양수가 터지니 본격적으로 아프기 시작했다…
그전에 느꼈던 진통은 정말 아무것도 아니었다. 아프면서 남편이 같이 심호흡도 해주고 손도 잡아줬었는데, 더 아프기 시작하니 정말 도와주는 모든 게 짜증이 났다. 심호흡도 못하겠다고 시키지 말라고 화도 냈고, 손도 뿌리치고 정말 너무너무 아팠을 때는 화만 났다. 그리고 정말 너무너무 더 아파지기 시작했다. 무통 주사를 요청했으나 분만실 이동 대기 중이라 그냥 의자에 앉아서 참을 수밖에 없었다. 일어서서 유튜브에서 본 감통 스트레칭을 할 여유 따위 없었다. 양수는 끊임없이 계속 콸콸 나왔고, 추웠고 너무 아팠다. 진짜 죽을 것 같이 아프기 시작했다. 그 의자에서 딱 고문받는 느낌이었다. 남편은 화가 나기 시작했고, 병원에 계속 무통 주사 언제 놔줄 수 있는지 요구했으나 분만실로 옮기지 않으면 맞을 수 없다는 답답한 소리만 했고, 나는 원래 부끄러움이 많아서 큰 소리를 잘 내지 않는데 정말 옆 모든 병실에서 다 들릴 정도로 큰 신음 소리를 끊임없이 냈다.
너무 아파서 내 팔을 꼬집고 계속 때렸고 또 진짜 육성으로 욕이 계속 나와서 욕도 하고… 너무 아프고 언제 끝날지 몰라서 눈물도 펑펑 쏟았다. 병원에서는 정말 미안하다… 이렇게 바쁜 적이 없었는데, 요즘 여름 방학이라 너무 바쁘다. 우리도 답답하다. 나중에 top management에 정식으로 컴플레인해라라고만…
나는 나중이고 뭐고 정말 지금 딱 죽을 것 같은데 언제 된다라는 기약 없이 생으로 진통을 겪고 있으니 정말 정말 정말 죽을 것 같았다. 우리 남편도 정말 머리끝까지 화가 나서 계속 나가서 언제 되는지 화를 냈고, 나는 정신을 잃을 것 같았다. 10:50pm까지 생으로 진통을 겪고 드디어 휠체어를 타고 분만실로 옮겨졌다. 이 때는 정말 기억도 잘 안난다. 정신줄을 붙잡고 있는 것 자체가 사치였다. 분만실에서도 무통 주사를 받을 때까지 진통은 정말 심했다. 원래는 몇 분에 한 번씩 오는 것으로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이미 진통은 계속 나와 함께하는 상태였다.
이때 나는 이미 8cm가 열린 상태. 3cm-8cm까지 무통주사를 끊임없이 요구했으나 분만실이 없어서 생으로 검사실/분류실 의자에서 진통을 겪은 것이다…
11:04 pm 무통 주사를 주는 마취과에서 왔는데, 정말 설명을 어찌나 길게 하던지. 나는 진짜로 숨도 못 쉬면서 너무 아픈데 천천히 부작용 등에 대해서 설명하고 심지어 했던 말을 또 하기도 하고 행동은 얼마나 굼뜬지…
진짜 YES YES YES YES… 를 몇 번을 반복한 뒤 신랑은 INFECTION 이 있을 수 있으니 마취하는 동안 나가라고 했다. 이때 신랑이 나간 것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 무통 주사 맞는데 보통 시간이 걸리지 않는데, 나는 정말 오래 걸렸고, 또 이때도 너무 힘들었기 때문에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신랑이 있었다면 보면서 고통스럽기만 했을 것 같다.
온몸에 힘이 다 빠진 상태였고, 진통이 끊기지 않고 계속 찾아와서 온몸이 덜덜 떨리고 있었기 때문에 쉽게 놓을 수 있는 무통 주사를 맞는 게 너무 힘들었다. 나도 빨리 맞고 싶어서 마취과 선생님이 말씀하시는 자세- 허리를 굽히지만 골반 쪽은 쭉 피기!- 를 정말 하고 싶었으나 정말 온몸에 힘이 빠져서 선생님도 힘들어하셨다. 오랜 시도 끝에 겨우 성공하고 나중에는 거의 내 몸을 마취과 의사와 간호사가 받치고 지탱하면서 겨우 맞은 것 같다. 솔직히 이 즈음에는 정신을 거의 잃었던 것 같다.
11:04 pm 무통 주사가 들어가고, 오줌 줄 꼽고 종아리종아리 압박 마사지 기계도 설치해주셨는데 무통 후유증으로 내 몸이 미친 듯이 계속 떨렸다. 너무 떠니까 남편도 엄청 무서워하고 걱정하던 와중에 우리는 영문도 모르는데, 간호사가 급박하게 다른 의료진들을 불렀고, 약 5-6명 되는 사람이 갑자기 들어오면서 긴급으로 엄청나게 긴박하게 무언가를 했다. 나는 아직도 아픈 상태였고, 몸이 계속 떨려서 상황 판단이 안되었지만 아직도 신랑의 모습이 ㅋㅋㅋ 뇌리에 박혀있다. 너무 놀래서 What's going on? What's going? Please tell me what's going on? 이러면서 미친 듯이 불안해하던 모습 ㅋㅋㅋ 알고 보니 나의 혈압이 엄청나게 떨어지면서 아기의 심박수 또한 원래 150-60인데 50대로 떨어졌던 것. 어떻게 해결이 되었는지는 모르지만 의료진들이 무언가를 했고 진정이 되었다.
아 많은 사람들이 미국 출산에서 궁금해하는 제모, 관장, 회음부 절개는 다 하지 않았다. 한국에서는 정말 다 필수적으로 하는 것들. 나는 처음 겪는 출산이기에 비교를 할 수도 없고, 그리고 없이 잘 낳았기에 굳이 필요한 건가 싶다 지금은. (미국 vs 한국 출산 비교 글에 대해서는 다른 글에서 자세하게 다룰 예정)
한 20분? 가량 지나니 무통빨이 드는 것 같았다. 그냥 멍하게 누워 있다가
12:50 am 즈음 정신이 좀 차려져서 핸드폰을 받고 대충 소식을 가족과 지인들에게 전달했다. 앉으려도 몸을 일으키니 휘청. 양쪽에 밸런스가 안 맞는 느낌이었다. (아마 무통을 제대로 못 맞은 것 같다. 의사가 무통 주사가 중간에 잘 꽂힌 것 같은지. 아님 한쪽으로 쏠린 것 같은지 어느 쪽에 있는 것 같은지 물어봤으나 그냥 모르겠었지만 너무 아파서 중간에 있는 것 같다고 잘 됐다고 대충 대답했기 때문...) 온몸에 전기가 통하는 느낌이었고, 뭔가 잘못된 것 같았지만 그냥 통증이 없음에 감사하고 버티고 있었다. 이 즈음 신랑은 뻗었고, 1:30 am 나도 언제 자궁문이 다 열릴지 모르니 자려고 노력해봐야지 하고하고 눈을 감은 지 5분 만에 내진을 하러 들어왔고 10cm가 다 열렸으니 이제 힘주기 push를 하자고.. 이때 정말 응? 벌써? 신랑은 자다가 일어나서 what? push? now? 엄청 놀랐다. 이 때는 힘도 안 들어가고 솔직히 아무 느낌이 안 나고 너무 졸린 상태여서 졸면서 push 몇 번했는데
단호한 의사가 'I know you're trying but you're not doing anything'이라고 하면서 나중에 시도해보자고 함.
다시 한 한 시간을 졸았나? 그다음 간호사가 다시 push 해보자고 했고, 의사들을 불렀다. 이때는 잠이 좀 깼는지 의사들이 (사실은 나는 레지던트 세명이 했고, MD 얼굴을 보지도 못함) 엄청 잘하고 있다고 했고.. 솔직히 나는 그렇게 힘들지가 않아서 의사들이 거짓말한다고 생각했다. 의사들이 정확하게 어디에 힘을
줘야 하는지 만져줬고, 한번 감을 잡으니 쉬웠다.
정말 push 몇 번 안 했고 하나도 아프지도 않았다. 본격적으로 push 하고 한 15-20분 지났나? 머리가 나왔다면서 급하게 NICU 간호사 등 아이를 받을 때 기본적으로 필요한 의료진을 불렀다. 그렇게 마지막 푸시를 하고 정말 말도 안 되게 쉽게 아기가 나왔다. 글을 쓰는 지금 또 감정이 북 바쳐 오른다. 진통 과정이 너무 아팠어서 정말 힘주기는 하나도 안 아팠고, 너무 쉽게 나와서 아기가 나왔을 때 황당하기도 했다. 내 위에 그 불어 터진 아이를 정말 바로 올려주는데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핏덩이에 정말 못생겼었는데 지금 보면 특히.. 너무 사랑스러웠다. 솔직히 지금 그때 사진을 봐도 너무 사랑스럽고 감격스럽다.
그렇게 10개월 동안 내 뱃속에 품었던 튼튼이가 나왔다. 남편에게 탯줄을 자를 거냐고 물었고, 나는 멍한 상태로 아기를 안고 있는 동안 남편이 탯줄을 잘랐다. 남편 말로는 질긴 순대를 자르는 느낌으로 정말 잘 안 잘려서 세 번에 걸쳐서 겨우 잘랐다고 한다.
회음부 절개를 우리 나라처럼 미리 하지 않았고, 2nd degree tear이 생겨서 꼬맸다. 멍한 상태여도 레지던트들이 꼬매는 것은 다 알고 있었으나 무통 주사로 아무 느낌도 없었다. 약간 불안한 마음은 있었던 것이 선배? 레지던트가 후배에게 계속 If I were you, I would stich here 이러면서 보여주고 후배가 하고… 약간 나를 놓고 트레이닝을 하고 있는 것 같아서 불안했지만 그걸 신경 쓸 여유는 없었다.
그렇게 후 처치를 하고 아이도 기본 검사를 하고 한 시간 뒤 우리는 회복실로 옮겨졌다.
회복실 후기는 2탄에서! 한국에서 낳아보지는 않았지만 회복실에서야 말로 미국이구나라고 느꼈던 다양한 경험들을 했다!
사설 ---------------------------------
영어공부도 단어도 많이 했는데 한 번도 느껴 본 적 없는 고통과 느낌을 영어로 표현하려니 너무 어려웠다.
예를 들어)
1. 소변줄 꽂은 부분이 뭔가 부은 느낌? 뭔가 끼는 느낌
2. 에피 맞고 찌릿찌릿하고 온몸에 전기가 오르는 느낌
3. 다리 근육통에 저림 힘이 안 들어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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